▶2012.03.25(日)
산행코스: 노채고개-원통산-(옛)노채고개-암릉갈림길-애기바위-서봉-동봉-절고개-철암재-화현고개(47번국도)
산행거리: 약 12.2km
산행시간: 약 9시간10분......휴식(50분/중식(20분)/알바(80분) 포함
날 씨: 맑음/강풍(-1/+11℃)
봄비 가 촉촉히 내려 드디어 봄의 문턱에 한발짝 더 다가서는 듯 싶더니
강풍이 몰아치고, 눈발이 흩날리고..
또 다시 꽃샘추위가 찾아와 봄길을 막아선다.
봄이 아예 실종됐는지..
일주일만 지나면 꽃 피는 춘사월인데,
올핸 유난히도 더디게 봄이 오는 듯..
도심에서 평온하게 맞이했던 봄비..
하지만 그 봄비가 운악산에선 눈으로 변해 산객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줄이야..
나에게 닥칠 악몽과는 같은 상황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옷장 깊숙히 넣어 두었던 겨울용 쟈켓을 다시 꺼내 걸치고 일동터미널로 향한다.
▼08:25
지난 구간에 이어 또 다시 일동터미널에 도착합니다.
한북정맥을 하면서 참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일동터미널..
일동터미널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아침이고 저녁이고 별로 들어갈 만한 식당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08:52
편의점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구입한 후 택시를 타고 노채고개에 도착합니다.
이번 구간의 들머리는 '은행나무가든낚시(2km)'라고 적힌 팻말이 매달려 있는 지점입니다.
들머리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배낭정리를 다시 하는 등 산행준비를 합니다.
▼09:11
산행준비를 마치고 출발..
▼그저께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려
혹시나 여기에는 눈이 내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젠과 스패츠를 챙겨 왔는데,
굳이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할 정도는 아닌 거 같아 그냥 진행합니다.
▼09:19
노채고개의 아스팔트도로에서 벗어나 산길에 발을 올린 지 약 8분쯤..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길매봉 2.40km, 원통산 1.08km..
▼첫 번째 올라야 할 산은 원통산..
원통산 정상을 향해 계속 진격합니다.
▼지난 도성고개-노채고개 구간을 할 때에도 강풍으로 정신이 없었는데,
오늘도 거칠게 불어대는 바람이 장난이 아닙니다.
별로 추운 날씨도 아니고, 바람만 안 불면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 같은데..
▼고도를 높여갈수록 바람은 더욱 거칠어지고..
▼쌓인 눈의 양도 점점 많아집니다.
▼등산화 속으로 눈이 조금 들어왔는지..
양말을 적시며 스며드는 축축한 물기가 발목의 어느 한 부위에 차갑게 와닿습니다.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배낭에서 아이젠과 스패츠를 꺼내 착용해야겠는데,
온통 눈밭에다 오른쪽 뺨따구를 마구 할퀴며 지나가는 칼날 같은 바람 때문에
진행을 멈추고 배낭을 내려놓을 만한 적당한 장소가 전혀 눈에 띄질 않습니다.
▼09:38
적당한 장소고 나발이고..
발목 이상의 깊이로 푹 빠지는 지점이 나와 어쩔 수 없이 그냥 대충 눈밭에다 배낭을 내려놓고
아이젠과 스패츠를 꺼내 착용합니다.
▼09:42
아이젠과 스패츠를 꺼내 착용하고 속 편하게 출발합니다.
▼실질적으로 내린 눈의 양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몰아치는 바람에 눈이 모조리 쓸려 능선상의 등로로 고스란히 옮겨진 듯합니다.
▼거친 바람을 막기 위해 쟈켓에 매달려 있는 후드를 뒤집어 쓰고 정신없이 진행하다 보니..
▼09:51
어느덧 원통산 정상입니다.
▼이넘의 한북정맥 이정표는 항상 글자를 알아볼 수 있게 사진을 찍기가 무척 힘듭니다.
꼭 각도를 조정하여 두세 번 찍게 만드니..!!
길매봉 3.48km, 노채고개 1.06km..
이정표의 노채고개는 337번 도로의 노채고개가 아닌 옛 노채고개인 듯..
▼원통산 정상은 수림으로 둘러싸여 아무런 조망도 얻을 수 없습니다.
▼09:53
간단히 물 한 모금만 입에 넣고 바로 원통산 정상에서 내려갑니다.
▼원통산 정상에서 잠시 내려오니 조망이 살짝 트이며..
▼지난 구간에 지나왔던 길매봉인 듯한 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10:05
원통산 정상에서 약 8분쯤..
완만한 오르막을 따라 능선봉에 올라서자 이정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원통산 0.5km, 운악산 5.16km..
▼계속 진행합니다.
▼또 다시 오름길이 나오고..
▼오르막을 올라 아무런 표시도 없는 또 하나의 봉우리를 지납니다.
▼봉우리에서 내려가자 제법 가파른 내림길로 이어집니다.
▼짧은 암릉구간이 나오고..
▼암릉을 우회하여 마루금이 이어집니다.
▼다시 내림길로 이어지면서..
▼10:23
이정표가 박힌 안부사거리로 떨어지는데, 옛 노채고개에 도착한 듯..
배낭을 이정표에 걸쳐 두고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원통산 1.02km, 용화사(右), 가평군 지방도387(左), 운악산 4.64km..
▼10:33
휴식을 마치고 운악산을 향해 다시 출발합니다.
▼서서히 운악산의 모습이 드러나고..
▼10:41
옛 노채고개를 떠난 지 약 8분쯤..
지도상의 444봉인 듯한 봉우리를 지나 내려가면서 다시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원통산 1.65km, 운악산 4.01km..
▼계속 운악산을 향해 돌진합니다.
▼눈이 없으면 융탄자처럼 푹신한 솔밭길일 듯..
▼솔잎이 수북히 떨어져 있는 내림길이 잠시 이어지다가..
▼10:46
안부로 내려서는데, 지도상의 큰고개에 해당되는 지점인 듯합니다.
▼안부를 지나 다시 오름길로 이어지고..
▼10:51
얼마 안 가서 또 다시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원통산 3.07km, 운악산 2.59km..
이정표의 거리표시가 어째 좀 이상합니다.
약 10분만에 운악산까지의 거리가 갑자기 약 1.5km나 확 줄어들었으니..
앞에 나온 이정표들의 거리표시가 잘못된 건지, 아님 지금의 이정표가 잘못된 건지??
▼어쩼든..
운악산이 점점 가까이로 다가오고 있는 걸로 봐서
운악산까지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탁 트인 시원한 조망을 보여주는 지점 하나 없이
시종일관 오르락내리락거리는 답답한 능선길만이 계속 이어집니다.
▼정맥산행객들의 발자욱이 눈길을 따라 선명하게 이어지다가도
때로는 바람에 쓸려 능선길을 덮친 눈이 그 발자욱 마저 덮어 아무도 지나간 적이 없는 것처럼 보여
찍혀 있는 발자욱이 언제 적에 지나간 흔적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다시 오름길이 나타나고..
▼이번엔 제법 가파른 오름길입니다.
▼11:11
가파르게 올라 봉우리에 올라서지만, 역시나 아무런 표시도 없는 무명봉..
▼가파르게 올랐던 것과는 달리 완만한 내림길로 이어지고..
▼간만에 살짝 시야가 트이면서 눈으로 뒤덮힌 어느 산의 등줄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연인산쯤 되려나..?
▼요상하게 생긴 바위가 나오고..
▼11:21
바위를 지나자 이정표가 나옵니다.
원통산 4.46km, 운악산 1.20km..
이정표의 거리표시가 도대체 어느 게 정확한 건지??
운악산까지의 거리가 갑자기 약 1.5km나 확 줄어들었을 때부터가 정확한 거 같기도 하고,
그 이전에 나왔던 게 맞는 거 같기도 하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정표의 거리정보는 단지 참조사항일 뿐..
이정표가 전혀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저 고맙게 생각해야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엉망인 이정표의 거리정보로 인해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을 뿐
길을 놓칠 염려는 조금도 할 필요가 없도록 마루금은 선명하게 한 줄로만 길게 이어지는 듯합니다.
▼이정표를 지나 내림길이 잠시 이어지다가
내림길은 곧장 오르기에 만만찮은 가파른 오름길로 바뀌는데, 쌓인 눈으로 인해 더욱 가파르게 느껴집니다.
진행 방향과 반대로 내려올려면 꽤나 스릴 넘칠 듯..
▼한바탕 된비알을 치고 올라오자 만만한 길로 이어지고..
▼만만한 길을 따라 잠시 진행하니..
▼11:29
다시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원통산 5.04km, 운악산 0.62km..
이정표의 거리표시가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운악산 정상에 성큼 다가선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제 대단히 위험하여 보조자일 없이는 우회해야 한다는 암릉갈림길도 머지 않은 것 같은데..
▼계속 진행합니다.
▼어딘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지만,
강풍을 직접 맞이하는 능선길만이 이어지고 있어
불행히도 칼바람을 피해 쉴 만한 적당한 장소는 전혀 나타나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야가 탁 트여 전망이 좋은 장소도 그닥 나오지 않고..
▼11:41
바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봉우리를 지나자..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친절한 정맥리본들이 산객을 좌측길로 안내합니다.
▼점점 가까워지는 운악산..
▼좌측 비탈면이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이는 능선길도 지나고..
▼'경기오악의 으뜸'이라는 운악산에 가까워짐에 따라 '악산'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듯
가끔씩 암릉이 출몰하면서 능선길도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합니다.
▼낭떠리지가 바로 발아래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후덜덜한 지점도 나오고..
▼보이는 거라곤 단지 하얀 눈과 마른 나무가지,
특징이라곤 고도를 높이며 이어지는 오르내림만 있을 뿐..
후드를 단단히 뒤집어 쓰고 뺨따구를 때리는 칼바람을 막으며 쉴 만한 적당한 장소가 나올 때까지 계속 진행합니다.
▼어느 봉우리로 향하는 오름길을 따라 진행하다가
고맙게도 봉우리로 직접 이어지지 않는 좌측 옆구리길이 나오고...
▼12:21
좌측 옆구리길을 따라 잠시 진행하니
드디어 능선 우측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지점이 나타납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일동터미널 근처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을 꺼내 점심식사를 합니다.
▼이제 운악산의 바로 턱밑에 와 있는 듯..
'운악산 0.62km'를 가리켰던 이정표에서 한참이나 온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정표의 거리정보가 영 개판인 모양입니다.
눈 땜에 조금 지체가 되었다손 치더라도 그 이정표를 지나 약 1시간을 왔다면 이미 운악산 정상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12:42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합니다.
▼봉우리를 우회하는 좌측 옆구리길이 다시 능선으로 이어질 무렵..
▼차츰 앞이 환해지면서 조금씩 시야가 트이기 시작하는데..
▼12:46
우아하게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면서
처음으로 조망다운 조망을 할 수 있는 암봉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몸을 가누기 조차 힘이 들 정도로 강풍이 불고 있어 제대로 조망을 할 수가 없습니다.
▼화악산을 땡겨서 보고..
▼명지산과 연인산이 시야에 들어오지만, 나무가지에 가려 완전한 모습을 담을 순 없습니다.
▼운악산 방향..
정신없이 불어 대는 강한 바람에 못 이겨 간단히 조망을 마치고 서둘러 암봉에서 내려갑니다.
▼그런데..
급한 내림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급한 내림의 바윗길에다 눈까지 쌓여 있어 조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 와중에 화현면 일대쯤으로 보이는 마을을 내려다보고..
▼조심스럽게 내려오니 불편한 암릉길이 조금 더 이어지다가..
▼진행하기에 별 지장이 없는 오름길로 바뀝니다.
▼제법 힘겨운 오름길이 이어지고..
▼오름길을 따라 약 15분쯤 힘겹게 올라가니..
▼13:07
또 다시 암봉에 이르는데,
이번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전망이 좋습니다.
▼운악산 정상이 바로 코앞에 있고..
▼뒤를 돌아보니
능선을 사이에 두고 좌측으론 포천시 일동면 일대가 살포시 내려다보이고..
▼우측으론 지나온 한북정맥과 명지지맥의 산줄기가 병풍처럼 펼쳐집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록에는 한 그루의 고사목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 암릉갈림길이 나온다고 하는데,
이것도 고사목이긴 하나 이건 아닌 거 같습니다.
▼역시나 강풍이 몰아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서둘러 암봉에서 내려가니, 내려가자 마자 오름길로 이어지는데..
▼가느다란 능선길이 위태롭게 이어지다가 암봉에 다가설 무렵
능선의 우측 바로 아래로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벼랑 위를 지나게 됩니다.
▼13:16
심하게 불어 대는 강풍에 몸이 휘청거려 바싹 쫄아 거의 기다시피 하여 올라서니
암릉갈림길 직전의 봉우리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고사목이 바로 눈앞에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보조자일이 없으면 위험하여 지나갈 수 없는 봉우리인 듯..
▼암봉에서 내려가는 길이 다소 위험하고 까다롭습니다.
쌓인 눈만 없다면 별 문제도 없겠지만..
의지할 수 있는 로프는 고사하고 빨래줄 하나 매달려 있지 않으니 바싹 긴장이 됩니다.
▼이번 구간을 준비하기 위해 이런저런 산행기를 훑어봐도
운악산구간을 겨울에 통과한 사례가 별로 없어 집을 나설 때부터 조금 찜찜했었는데...
점심식사를 한 뒤부터 수시로 아찔한 암릉길이 이어지고,
진행하면서 '만일 반대로 내려간다면 더 위험할 듯한 오름길'이 여러 차례 나왔던 거 같습니다.
▼13:24
드디어..
우측 내림길로 인도하는 여러 정맥리본들이 나타나는 걸로 봐서 암릉갈림길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호흡을 고르며 휴식을 취합니다.
▼13:31
흔적을 하나 매달아 놓고 편안한 길이 이어지길 바라며 암릉우회길로 내려가는데,
그러한 산객의 바람과는 전혀 상관없이 가파른 급경사의 내림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급경사의 가파른 내림길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산객을 더욱 바싹 긴장케 만드는 것은
지금까지 등로에 찍혀 있었던 정맥산행객들의 발자욱이 우측 내림길로 내려서는 순간 완전히 사라지고
시리게 하얀 눈이 그 누구도 밟지 않은 채 고스란히 그대로 쌓여 있다는 점입니다.
여태껏 눈길에 발자욱을 남긴 정맥산행객들은 암릉구간을 직접 통과했는지, 아님 여기서 포기하고 도로 빽하여 하산을 했는지..??
▼그런데 더욱 황당하게도..
긴장된 마음으로 급경사의 가파른 내림길을 따라 약 50m(?)쯤 내려가니
작은 바위가 나타나면서 가파른 내림길이 뚝 끊어져 버려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립니다.
의지할 나무뿌리나 가지라도 있으면 붙잡고 간단히 내려갈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딱히 잡을 만한 게 없습니다.
바위 아래로 급경사의 비탈면이 계속 이어져 뛰어내리는 것도 부담스럽고..
혹 잘못 내려온 게 아닌가 싶어 다시 올라가 보기도 하고, 우왕좌왕..
▼주위를 살피다가 고개를 좌로 돌리니 현재 서 있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약 7-8m 거리에 암벽이 있는데
암벽 옆으로 정맥산행객들이 지나갔는지 암벽 주위의 나무가지에 매달린 빨간 리본이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어제 산행정보를 챙기면서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읽어 보니
암릉갈림길에서 한참을 내려가 다시 능선에 올랐다는 분도 있고,
그렇게 한참 내려갈 필요 없이 조금 내려가다가 좌측으로 진행한 분도 있다고 하는데, 바로 저 지점이 그 지점인 듯합니다.
그러나..
현재 서 있는 지점과 암벽 사이에도 눈이 수북히 쌓인 급경사의 비탈면이라 도저히 접근할 방법이 없습니다.
▼길이 뚝 끊어진 작은 바위 위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미끄러질 각오를 하고 기어서 내려갈 작정으로 뭔가 잡을 만한 것을 찾는데, 근처에서 끊어져 버려진 로프조각이 발견됩니다.
"빌어먹을..!!"
비록 아무 소용도 없는 로프지만,
로프를 보니 다른 사람들도 작은 바위를 지나 내려간 게 맞다는 생각에 알바는 아닌 거 같아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됩니다.
작은 바위에서 엉거주춤 내려가다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뛰어내리니
눈밭에 발이 쑥 빠지면서 미끄러지지 않고 오히려 착지가 정확히 될 뿐만 아니라 무릎에도 전혀 충격이 가해지질 않습니다.
▼하지만 작은 바위를 지나 내려온 것은 단지 앞으로 펼쳐질 험난한 난관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마치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급경사의 가파른 비탈면을 따라 끝없이 내려가는데..
길인지 아닌지 전혀 분간을 할 수가 없고, 리본조차 발견되지 않으니 불안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키를 타고 미끄러지 듯 눈밭을 헤치며 내려가면서
"이게 만약 길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되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순간
두려움이 엄습하면서 '고립'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산행을 포기하고 길 같지 않은 길을 따라 어떻게 될지도 모른 채 무조건 내려가는 것도 그렇고,
더군다나 내려왔던 길을 눈을 헤치며 다시 오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14:02
눈밭에서 등로를 못 찾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우왕좌왕..
한참을 헤매다 너무나도 반가운 노란 리본 하나가 우연히 발견됩니다.
암릉갈림길에서 내려선 지 약 30분 만의 일입니다.
▼연이어 또 하나의 리본이 발견됩니다.
반가운 리본이 긴장된 산객의 마음에 잠시나마 위안을 가져다 주긴 하지만
사방을 뒤덮은 눈으로 인해 여전히 어느 게 길인지 전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다 길 같기도 하고, 다 아닌 것 같기도 하고..
▼14:08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을 대충 헤치며 진행하니 산객을 오름길로 인도하는 또 하나의 리본이 발견되는데,
암릉갈림길에서 내려올 때보다도 더 가파른 오름의 눈밭을 따라 악몽과도 같은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될 줄이야..!
집에 와서 인터넷을 뒤적거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살펴보니
암릉갈림길에서 내려와 계곡 너덜지대를 따라 올라야 된다고 한다.
리본이 연속으로 발견된 지점 근처에 계곡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되는데
아마 그쪽으로 올랐어야 되었던 모양이다.
계곡 너덜지대의 바위가 온통 눈으로 뒤덮혀 있었고,
가파를 뿐만 아니라 전혀 길 같지 않아 오르기에 부담스러워 그쪽으로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모든 걸 그저 눈 탓으로 돌릴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개고생을 한 것은 어쩌면 나의 당연한 불찰이고 자만에서 비롯된 일이 아닌가 싶다.
암릉갈림길에 대한 상세한 산행정보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고,
의례히 그랬듯이 나무가지에 매달린 정맥리본이 당연히 길안내를 해주리라 믿고 집을 나섰으니..
사실...
마지막으로 발견된 노란 리본이 말하려 했던 것은 어쩌면 오르막길이 아닌지도 모른다.
숱하게 지나다녔을 정맥산행객들의 흔적을 완전히 감추어 버린 눈으로 인해
등로가 전혀 판단이 안 서는 상황에서
지능선으로 여겨지는 오르막길을 택한 것은
노란 리본 주위에서 그 당시의 상황으로선 그 길이 그나마 가장 진행하기에 수월하게 보였었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노란 리본의 인도에 따라 오름짓을 시작하는데
나무의 기둥이나 가지를 붙잡지 않고서는 한 발 한 발 올라서기가 정말 만만찮을 정도의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진다.
항상 그렇듯이
하늘이 맞닿는 지점까지만 올라가면 뭔가 답이 나오겠지라는 기대를 안고 힘겹게 올라가면
나타나는 건 올라야 할 또 하나의 봉우리..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자 상황은 점점 안 좋은 쪽으로 흐른다.
오름세는 더욱 가팔라지고, 길은 더욱 불투명해진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오르는 일 뿐..
올라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발아래가 아찔할 정도로 까마득하여 포기하고 뒤로 후퇴한다는 것은 아예 상상도 할 수 없다.
겁이 난다.
의지할 나무가 없을 땐 간담이 서늘해진다.
그럴 땐 눈밭을 뒤적거려 삐져나온 작은 뿌리라도 있을까 찾아 본다.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죽기살기로 봉우리 하나를 넘고나니
손이 미세하게 떨리며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는다.
이건 악몽이야..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속으로 "침착, 침착, 침착.."을 외친다.
▼14:37
그렇게 약 30분 동안 죽기살기로 두세 개의 봉우리를 넘어서니
더욱 난감하게도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암봉이 떡 하니 버티고서 공포의 그림자처럼 산객의 앞길을 막아 세웁니다.
아..미칠 노릇이다.
이제 정말 오도가도 못할 처지가 된 것 같은데..
119를 불러야 하나?
또 다시 "침착, 침착, 침착.."을 속으로 되뇌이며 주위를 살피는 중
좌측 아래로 넓직한 너럭바위가 내려다보이는데 너럭바위로 내려가면 암봉을 우회할 수도 있을 거 같다.
▼너럭바위에 내려서니
허연 눈을 뒤집어 쓴 운악산의 위압적인 암릉이 병풍처럼 펼쳐지며 산객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마치 독 안에 든 쥐가 된 듯..
▼하지만 암봉을 우회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저 큼지막한 바위를 부둥켜 안고 돌아나가는 게 현지점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듯한데,
바위를 지난다고 한들 또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일단 시도나 하자는 생각에 바위 앞으로 다가섰지만,
바위가 미끄러울 뿐만 아니라 마땅히 잡을 데가 없어 쉽게 부둥켜안고 돌아설 수도 없다.
어설프게 바위를 잡았다가 손이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뒤로 자빠져 그대로 아래로 추락하여 황천길로 직행할 것 같고..
꼼짝없이 고립된 처지에 공포감이 밀려온다.
다시 119 생각이 나고,
119를 불러도 나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고,
무엇보다 어떻게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쪽 팔린다는 생각이 더 든다.
▼14:46
이런 경우를 두고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하는 듯..
마냥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다시 바위 앞으로 다가가 잡을 데를 찾기 위해 바위 이곳저곳을 만지며 눈을 쓸어내리는 중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와도 같은 생명의 끈이 발견됩니다.
▼생명의 끈을 붙잡고 바위 옆으로 돌아나오니
비록 가파른 비탈면이지만 그나마 진행이 수월한 흙길이 암릉 옆으로 간신히 나 있습니다.
물론 길이라 할 수도 없고, 나무에 의지하지 않고는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지만...
▼14:50
때로는 엎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미끄러지기도 하고..
발버둥을 치며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니 머리 위로 하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미 몇 번을 속았기에 하늘이 보일지언정 그리 큰 희망은 가지지 않는다
하늘과 맞닿는 지점까지 가면 올라야 할 봉우리가 또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에..
오를수록 비탈면의 경사는 더욱 가팔라져 한 발을 떼서 위로 올려놓기도 쉽지 않다.
한 걸음 올라설 때마다 입에서 '끙~'하는 신음성이 절로 튀어나온다.
더욱이 진행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나무가 덤성덤성 심겨져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 나무에 의지했다가 다른 나무로 옮겨가는 게 너무나도 힘들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소리가 들리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진행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귀를 기울여 보지만 더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너무나 힘들어서 이제 환청까지..?
한참을 끙끙거리며 올라가니..
하늘과 맞닿는 부위에 돌출된 뭔가가 조그맣게 눈에 들어오는데,
다름아닌 이정표가 아닌가..
아...
꿈인지 생신지..
생명의 끈이 있던 바위에서 하늘과 맞닿는 능선까지는 거리로 길어봐야 대략 300m쯤 되었으리라..
그 300m의 거리를 오르는 데 약 30분이 걸렸으니..
▼희망의 이정표를 보니 "아..이제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비탈면을 따라 올라가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걸 어떻게 올라왔나 싶을 정도로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것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느껴집니다.
▼15:16
고립의 시간, 공포의 시간이 끝나고
희망의 이정표가 세워진 능선상에 올라서자 바로 옆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한 팀의 등산객들이 그곳에서 도란도란 한담을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비탈면을 오르면서 환청처럼 들려왔던 사람소리는 바로 이들에게서 비롯된 소리였던 것입니다.
To be continued...
한북정맥 제4구간: 노채고개-운악산-화현고개 Part 2에서 계속..
-마음으로 걷는 산길이야기 by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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