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저산

명지산! 봄을 시샘하는가..?

산장 2009. 6. 6. 21:00

 ▶2009.3.14(토요일)

    산행코스: 익근리-승천사-명지산정상-명지폭포-승천사-익근리

    소요시간: 6시간

    날      씨: 맑음

 

    전날 봄비가 내리더니

     꽃샘추위가 찾아와 강풍이 불고 일부 지역에는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 

     내일오후에나 예전기온을 회복한다고 뉴스에서 공갈을 친다.

     어쨌든 비는 그쳤고, 일요일은 다른 일이 있어 산행을 할 수 없으므로

     전날 미리 챙겨 놓았던 배낭에다 따뜻한 물만 추가하여 인천터미널로 향한다.

 

    06:40  인천터미널에서 가평행 시외버스 탑승

    08:40  가평도착

    08:40 ~ 09:00  분식집에서 아침식사

    09:00  용수행 버스 탑승

    09:30  익근리 도착

    09:50  산행시작

   

    사실 오늘산행은 익근리에서 출발하여 명지산 정상을 밟고

     아재비고개를 거쳐 연인산까지 가서 백둔리로 하산하는 명지산-연인산 종주를 목표로

     며칠 전부터 벼르고 있던 터였다. 

     백둔리에서 연인산을 먼저 치고 명지산 4개봉을 거쳐 내려올 경우,

     먄약 시간이 지체가 되거나 알바라도 하게 되어 익근리에서 가평터미널로가는 관내버스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불가피하게 비싼 콜택시를 불러야 하기 때문에

     비교적 막차시간이 넉넉한 백둔리가 날머리로 적합하다는 판단이 들어서 익근리를 들머리로 잡은 거 였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산행을 시작한 지 약 1시간 후 명지폭포를 지나 갈림길에서 무지막지하게 날라가 버린다. 

    

                 ▼관내버스가 익근리에 등산객무리를 한 무더기 뱉어놓자마자 등산객들은 일제히 탄호성을 터뜨린다.

                   "이~야!"

                   멀리 보이는 명지산능선을 덮고 있는 하얀 설경에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해내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 감탄사는 나중에 곡소리로 변하고 만다.  

 

                 ▼연일 따뜻했던 봄날씨로 비록 비가 내렸지만,

                   그저 봄비가 내렸을 뿐이겠지 시퍼 준비를 제대로 못해 온 일부 등산객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달려드는 매서운 바람과 멀리 보이는 설경에 부랴부랴 아이젠을 사려고 난리다.

                   늘상 버릇처럼 산행에 앞서 첫 번째 하는 일은 화장실로 직행하는 일이다.

                   볼일을 보고 입고 왔던 쟈켓을 벗고 배낭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산행길에 오른다. 

 

                 ▼마지막으로 담배를 한대 물고 명지산입구 관리소 주위를 맴돌고 있는데, 관리소를 지키고 계시던 아저씨가 나를 부른다.  

                   아무 의심없이 "저요?"라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더니, 라이터를 두고 가란다.

                   이런 된장...!

                   꼼짝없이 걸린 셈이다. 저항을 했더니 단호한 입장으로 절대 들여보내 줄 수 없단다.

                   속으로는 배낭 안에 라이터가 하나 더 있을 것이라는 엉큼한 계산하에 순순히 라이터를 내놓으니,

                   그제서야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하산할 때 찾아가란다.

                   연인산으로 내려올 텐데 어떻게 찾아 가냐고 불평을 했더니, 그쪽은 오늘 눈 땜에 통제되어서 갈 수 없단다.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면서 "라이터 하나만 뺏겼네"라고만 생각하고 본격적인 산행길에 오른다.    

 

                 ▼초입은 순탄한 임도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소리와 함께 공원의 산책길을 걷는 듯 기분이 상쾌하다.

                   입구 주차장에서 만났던 싸늘한 냉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따뜻한 햇볕이 주위를 감싼다.  

 

                 ▼계곡을 따라 임도를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승천사 일주문을 만난다.

 

                 ▼지도상에서는 승천사에서 사향산-화채바위-명지1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걸로 되어있는데, 어딜 봐도 이정표를 찾을 수 없다.

                   시간상 그 코스는 다음을 기약하고 승천사를 그냥 지나친다. 

 

                 ▼승천사를 지나자 계곡 물소리는 점점 더 요란해진다.

                   전날 제법 많은 봄비가 내린 탓이리라...

 

 

                 ▼지대가 낮은 탓인지 비나 눈이 온 흔적을 찾기 어렵다

 

                 ▼승천사에서부터 걸어온 지 약 30분이 지나서 명지폭포 근방에 도착한다. 

                   외국의 장대한 폭포에 비하면 보잘 것 없겠지만,

                   그래도 소박한 우리의 것이고 이곳의 명소이니 만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둘러보기로 한다.  

 

 

                 ▼눈과 얼음을 헤치고 내려오는 서늘한 물줄기가 봄을 앞둔 시점에서는 이채롭게 보인다. 

                   보다 가까이에서 정면으로 보기 위해 돌과 돌사이의 빙판길을 내딪는 순간 빙판이 와지끈 내려앉는다.

                   이런 씨부럴....!

                   바위에 왼쪽 무릎을 부딪혀 통증이 느껴지지만 참을 만 하다.

                   하지만 등산화가 물에 젖어 양말의 발가락 부분이 축축해져옴을 느낀다.

                   이것이 이번 산행의 어떤 복선일까...내심 불안해진다.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 겨울나무...

                   하지만 어김없이 올해도 며칠만 있으면 울긋불긋 새옷으로 갈아입으리라!

                   눈으로 뒤덮인 산꼭대기...

                   보기만해도 웬지 압도 당하는 기분이 든다.

 

                 ▼차츰 오르막으로 접어들면서 이마에도 땀방울이 조금씩 맺히고...

                   전날 내려 쌓인 눈과 얼어 붙은 빙판길도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한쪽은 명지산 1.8km, 다른 한쪽은 명지산 2.3km...

                   둘 다 명지산을 가리킨다.

                   지도상에서는 명지폭포를 지나서 명지1봉과 명지4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명지폭포를 지나 이 정도 왔으면 갈림길에서 명지4봉을 지시하는 팻말이 나타날 법도 한데, 

                   예상과는 달리 요따구 이정표만 나타나다니...

                   고민이 되지만, 긴 쪽이 명지4봉으로 가는 방향이 아닐까 라는 결론을 내리고 2.3km방향으로 GO!

 

                 ▼이정표를 지나자 본격적으로 스스히 오르막이 시작된다.

                   차츰 올라갈수록 쌓인 눈의 깊이도 조금씩 깊어진다.

                   눈이 쌓이면서 녹았는지 저벅저벅 소리가 난다.

                   아무도 먼저 올라간 사람이 없는지 발자국은 찾아 볼 수 없다.

                   짐승 발자국은 이리저리 흩어져 보이는데...

                   산악회리본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걸 봐서는 잘못 접어든 길은 아니다.

 

                 ▼쌓인 눈은 점점 깊어지고,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가끔씩 보이는 산악회리본에 위안을 받을 뿐이다.

                   발이 푹푹 빠진다.

                   미끄럽진 않지만 이제 아이젠을 착용해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쌓인 눈 속에 희미하게 통나무계단이 나타난다.

                   정상적인 산길임에 분명하다.

                   누군가 먼저 통나무계단을 헤치고 간 흔적도 보인다.

                   일단은 안심이 된다. 

                   하지만 점점 더 쌓인 눈은 깊어지고, 이미 발목 깊이 이상으로 푹푹 빠진다.

                   눈이 등산화 안으로 들어와 양말이 젖어들기 시작한다.

                   발이 시린 느낌도 들고...                    

 

                 ▼나타나는 이정표는 단순히 명지산/익근리만을 가리킨다.

                   지도와 인터넷에서 말하는 화채바위나 명지4봉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언급이 없다. 

 

                 ▼계단이 사라지고 산길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이제 두 다리는 거의 무릎 바로 밑에까지 눈속에 파묻혀 있고,

                   앞서간 어느 등산객이 남긴 발자국만을 따라 한발 한발 내딛는다.

                   신발 안은 완전히 젖어 철벅철벅 거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패츠를 챙겨 올려고 했었는데...후회막심!

 

                 ▼능선과 맞닿는 파란하늘이 보인다.

                   거의 정상에 이르렀다는 신호다.

                   하지만 여기서 앞서간 등산객의 발자국은 끝이 나고 만다.

                   그 사람도 헤매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혼자 헤쳐나갈려니 얼마나 힘이 들까...!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한대 빨려고 배낭을 뒤적거려 보지만 라이터가 없다.

                   아무리 뒤져봐도 없다. 이럴수가...!  

 

                 ▼눈이 없는 곳을 찾아서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싶지만 온사방이 눈이다.

                   게다가 주위는 경사져서 발을 헛디뎠다간 다시 익근리 주차장까지 미끄러져 내려갈 것 같다.

                   담배도 못 피고 커피도 마실 수 없고 물이나 마시며 안정을 취하는 동안 저 아래에서 사람소리가 난다.

                   저들 역시 내 발자국을 따라 올라오고 있으리라...

 

                 ▼명지4봉이고 나발이고 무조건 정상 능선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파란하늘이 바로 머리 위로 보이건만 쌓인 눈을 헤쳐 오르는 것이 쉽지않다.

                   스틱을 앞에다 내다 꼽고 몸울 지탱하며 발을 한 발짝 위로 올리지만 발이 눈 속에 고정되지 않아 그대로 엎어지고 만다.

                   한 발짝 위로 올라가기가 너무 힘들다.

                   도로 내려갈려고 아래를 쳐다보니 워낙 경사져 오히려 올라가는 게 더 쉬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우회해서 갈 수 있는 길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나무를 부여잡고 간신히 올라서지만, 붙잡을 수 있는 다른 나무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

                   눈 속에 파묻혀 삐죽 나와 있는 나무뿌리를 잡았더니 얼어서 그런지 뚝 부러진다. 

 

                 ▼이런 사투를 반복적으로 벌인 끝에 약간은 편안한 길을 만난다.

                   드디어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정상에 도착하니 정상 해발 1267m임을 표시하는 약간 허무한 이정표가 기다린다.

 

                 ▼정상석도 없고 정상에서의 조망도 없어 실망하던 중...

                   주위를 살펴보니 한쪽에 눈에 덮여있는 바위들이 몰려있다.  

                   바위 위로 올라가면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을 것 같아 눈에 덮힌 바위 하나를 엉금엉금 기어 올라서니,

                   뜻하지 않게 정상석이 우람하게 서있다.  

                   정상석을 촬영하고 산아래를 조망하고 있으니 그제서야 뒤따라 오르던 등산객들도 정상표시목에 도착하고,

                   역시 정상석이 보이질 않아 실망하는 표정이 역역하다.

                   정상석이 여기 있다고 말하니, "아~그래요"하며 일제히 바위를 헤짚고 올라온다.

                   덕분에 내 개인사진도 한 장 찍고, 그들 단체사진도 찍어주고... 

 

                 ▼완전 노인네가 한분 앉아 있는 거 같다.

                   빨간 털모자... 영판 복덕방에서 장기 두다 나온 할배 같다.  

 

▼명지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명지2봉.

 

                

▼앞에 보이는 것이 백둔봉.

  뒤로 어렴풋이 보이는 산이 연인산이리라..!

 

                

▼경기도에서 제일 높은 화악산.

  화악산이 내뿜는 카리스마는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컵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막걸리도 한 잔 얻어 먹고 나니 벌써 2시30분...

                   연인산으로 갈 시간도 안 되고 엄두도 안난다.

                   실제 통제가 되어 통행할 수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통제가 안 되어 있더라도 다시 눈을 헤쳐나갈 자신이 없다.

                   만난 등산객들과 같이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었지만 그들 역시 명지2봉, 3봉 다 포기하고 하산해야겠다고 한다.

                   다들 한 목소리로 눈이 이렇게 많이 왔으리라곤 전혀 예상을 못했단다.

                   그들 역시 나처럼 신발이 다 젖고 눈을 헤치고 오느라 기진맥진한 상태라 정상까지 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하산길을 걱정하고 있다.    

 

                 ▼어느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편할지 각기 다른 코스에서 올라온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다들 혀를 내두르며 엄청 힘들었다고 얘기한다.

                   하기사 전부 쌓인 눈을 헤치며 길을 스스로 만들면서 올라왔을 터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올라왔던 길은 정상적이지 않는 등로라서 다시 그쪽으로 내려간다는 것이 끔찍하고,

                   예감에 아까 표지판에서 봤던 1.8km코스가 아무래도 보다 정비가 잘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쪽 길을 택한다. 

 

                 ▼예상대로 나무계단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급경사지역엔 로프도 설치되어 있다.

                   올라왔던 길에 비하면 정말 거저먹기다. 

 

 

 

                 ▼이런 쉬운 길을 두고 눈을 파헤치며 왔던 게 좀 억울하긴 하지만...

                   처음 올라왔던 사람들은 나름대로 다들 힘들었으리라...!

                   물론 중간중간 어렵고 위험한 곳도 있었지만...

                   얼마간 제법 속력을 내어 내려가자 금방 눈이 얕아 녹은 길이 나타난다.

                   더 이상 눈을 헤치고 나갈 필요가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눈이 녹아 질척한 길이 이렇게 반가운 적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때로는 질척하고, 때로는 눈이 얼어 빙판이 된 길...

                   하지만 그런 길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척척 걸어가면 되는 것이니까...

 

                 ▼어느새 2.3km/1.8km 갈림길의 장소...

                   다행스럽게 너무 쉽게 내려올 수 있어서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더 이상 아이젠이 필요 없어 아이젠을 등산화에서 해체하다 보니 등산화끈이 얼어 붙어 있다.

                   하기사 정상에서 밥 먹고 다시 장갑을 낄려고 했더니 장갑이 눈에 쩔어 꽁꽁 얼어 붙어 있을 정도였으니...

 

 

                 ▼다시 승천사로 향하는 임도가 이어진다.

                   정말 편안한 길이다.

                   올라갈 때의 길이 상상이 안 될 정도의... 

 

                 ▼눈과의 사투를 벌였었던 불과 몇시간 전의 일들은 어느새 망각하고...

                   오히려 계곡물을 감상할 여유도 생긴다.

 

 

                 ▼아무리 봄을 시샘하는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얼음을 께고 힘차게 내려오는 저 물줄기처럼

                   겨울은 결코 다가오는 봄을 막지 못하리라...

 

 

                 ▼계곡물을 감상하던 도중,

                   문득 익근리에서 가평 가는 버스가 그렇게 많지 않음을 인식하고 버스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용수발 가평행이 16시10분과 17시50분 두 개 남았다.

                   용수발이니까 익근리출발은 16시20분 정도...

                   그 버스를 타려면 약 20분이 남았고, 그걸 놓치면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할 상황!

                   지금 필요한 건??

                   스피드!!!

  

 

그렇게 명지폭포에서 승천사주차장을 지나 익근리 주차장까지 졸라게 구보로 달려온 결과,

다행히 몇몇 등산객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관리소에서 라이터를 찾으려고 창문을 열어 봤더니 아무도 없다..

에라이..!

참았던 담배를 필려면 가게에서 라이터를 사야 한다.

아까운 돈 중에 하나가 일회용라이터를 사는 돈이다.

아까운 돈 500원을 지불하고 라이터를 사서 담배에 불을 부치고 한 모금 빠는 순간 버스가 온다.

라이터를 뺏기고 담뱃불을 부치자마자 버스가 온 것은 재수가 없는 것이고,

버스를 안 놓친 건 재수가 있는 것인가...?

제기럴...

 

-마음으로 걷는 산길이야기 by 산장